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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액션영화 ‘아수라’ – 혼돈 속 인간 본성을 파헤치다

by maymoney12 2025. 6. 30.

영화 아수라 포스터
영화 아수라

김성수 감독의 2016년 작품 ‘아수라’는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지옥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치열한 생존극을 그린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주요 테마와 인물 심리,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감상평을 전합니다.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 '아수라'의 세계를 통과하다

<아수라>는 한국 영화사에서 흔치 않은, 철저히 냉소적이고 어두운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입니다. 감독 김성수가 연출하고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권력과 생존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의 치열함을 그려냅니다. 이 영화가 특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선과 악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세계에서 인간들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거침없이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한도경(정우성 분)은 경찰이면서도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뒷일을 봐주는 인물로, ‘정의’와는 거리가 먼 선택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지옥을 보여줍니다. 이번 감상평에서는 인물 심리를 통해 본 ‘아수라’의 세계관,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연출의 의도, 정치와 범죄의 경계에서 드러난 사회적 메시지 세 가지 관점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1. 인물로 완성된 지옥도 – 악인이 아닌 생존자들

‘아수라’라는 제목은 불교에서 유래한 '아수라장', 즉 끝없는 싸움과 고통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량하지 않으며, 누구 하나 쉽게 응원할 수 없는 ‘회색의 인간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우성이 연기한 한도경은, 중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부패한 시장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경찰입니다. 그는 정의보다는 생존을 택한 인물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의 무게를 견디며 점차 무너져갑니다. 그런 한도경이 처한 상황은 단순한 개인적 타락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오염된 사회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야만 하는 사람’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는 극 중 가장 강렬한 악역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청렴하고 유능한 시장이지만, 실제로는 폭력, 살인, 협박, 조작을 일삼는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자입니다. 그는 선함을 가장한 괴물이자, 사회 시스템의 위선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검사 김차인(곽도원 분), 형사 문선모(주지훈 분) 역시 처음엔 정의를 대변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생존 앞에서는 한도경 못지않은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결국 ‘아수라’는 이기심, 공포, 절박함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인물의 심리와 관계로 완성한 지옥도입니다.

2. 스타일 속에 숨긴 분노 – 연출의 결기와 감정

<아수라>에서 포인트는 어두움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김성수 감독의  연출이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김성수 감독은 화면의 채도, 조명, 편집 속도를 이용해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등장인물의 감정을 정면으로 들이밀 듯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주지훈과 정우성이 좁은 골목에서 추격을 벌이는 장면은 무겁고 혼탁한 색감 속에서 인물의 공포와 긴박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립니다. 혈흔이 튀고, 비명과 욕설이 난무하지만 그 모든 것이 스타일로만 포장되지 않고, 인물들의 절박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액션 장면 역시 리얼리즘에 기반합니다. 이 영화에서 총격이나 격투는 쾌감보다는 불쾌감을 유발할 정도로 거칠고 리얼하게 연출됩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세계는 멋진 누아르가 아니다’라는 불편한 자각을 갖게 합니다. 

3. 현실과의 경계 – 영화는 끝났지만 지옥은 계속된다

<아수라>가 단순한 액션 누아르를 넘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그 안에 그려진 ‘지옥’이 그저 허구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극 중 박성배가 행사하는 절대 권력, 검찰과 경찰이 공생하며 부패를 묵인하는 구조, 정의보다 생존을 택하는 현실 속 개인들— 이 모든 설정은 영화 속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예전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어 온 권력형 범죄의 전형과 겹쳐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피투성이가 된 한도경이 박성배를 향해 총을 쏘며 절규하는 모습은 단지 복수의 클라이맥스가 아닙니다. 그 장면은 “도대체 왜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감독의 외침이자,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입니다. 그 안에서 관객은 자신이 한도경일 수도 있고, 김차인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박성배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자각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수라>는, 단지 액션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라 지금의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하지만 진실한 보고서입니다.

지옥이 있다는 증명 – ‘아수라’는 현실의 또 다른 얼굴

<아수라>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나 정의로운 복수극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극도의 불편함을 줍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욕설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되도록 기피하는 장르이고 대부분의 관객도 그렇게 느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웰메이드 장르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세련된 액션을 넘어 지독한 현실성과 감정의 농도로 관객을 끌어당기고, 그들이 스스로의 세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아수라장'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수라’는 영화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이 지금도 머릿속에 맴돌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