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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의 여성 서사 – 탈주와 연대로 완성된 자유

by maymoney12 2025. 6. 29.

영화 아가씨 메인 포스터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두 여성의 사랑과 연대를 중심으로 한 서사로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이 기존의 남성 중심 서사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여성 캐릭터들의 주체적 선택과 자유를 어떻게 그려냈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아가씨’의 서사적, 미학적 의미를 깊게 풀어봅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욕망과 자유의 이야기

2016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정교한 구성과 시각적 미학, 그리고 파격적인 서사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이라는 독특한 배경으로 각색된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나 로맨스의 경계를 넘어 여성 서사를 중심에 둔 강렬한 페미니즘 서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그녀를 속이기 위해 접근한 하녀 숙희(김태리 분), 그리고 그 사이를 조종하려는 가짜 백작(하정우 분)이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여성 인물들이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고 주도하는 과정이 서사의 핵심으로 자리합니다.

본 글에서는

1) 전통적 남성 권력의 해체와 여성 주체성의 회복,

2) 여성 간 연대와 섬세하게 표현된 감정선,

3) 시각적 미장센을 통한 여성의 시선 재구성

세 가지 측면에서 <아가씨>의 여성 서사를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1. 남성 권력의 붕괴 – 대상에서 주체로 이동한 여성

<아가씨>는 표면적으로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중심에 있는 것은 여성 인물들의 ‘주체성’입니다. 히데코는 겉보기엔 유약하고 순응적인 귀족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랜 시간 억압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온 단단한 생존의 방식이 숨어 있습니다. 숙희 역시 처음에는 백작의 명령에 따라 히데코를 속이는 도구였지만, 점차 히데코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눈을 뜨고, 타인의 계획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구조가 아닌 상호적이며,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남성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히데코가 고백하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성적 대상화와 정신적 구속 아래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끊어내는 행위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해방’의 선언이 됩니다. 이 영화는 남성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던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고 주도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서사적 구조를 탁월하게 구현해 냅니다.

2. 연대하는 여성들 – 감정, 사랑, 그리고 탈출의 서사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처음엔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 관계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 사이엔 진정한 감정과 이해가 싹트게 됩니다. 이는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 로맨스의 클리셰를 벗어나 ‘여성 간의 연대’를 감성적으로 그려낸 서사입니다. 히데코는 오랜 시간 삼촌(조진웅 분)에게 학대와 통제를 받으며 성인 여성의 자율성을 빼앗긴 채 살아왔고, 숙희는 빈민가에서 자란 후 조작된 신분으로 위장해 생존을 위해 수단과 도구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 두 여성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탈출을 도모하는 과정은 여성 서사에서 중요한 ‘주체적 선택’의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두 사람은 남성 중심 세계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였지만, 결국 서로를 통해 ‘공감’과 ‘욕망’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의 사랑을 적나라하거나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섬세하고 정서적인 감정선으로 표현합니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여성의 감정을 중심에 둔 이 관계는 한국 영화 안에서 보기 드문 정교한 여성 중심 로맨스로 자리매김합니다.

3. 미장센과 시선의 전환 – 여성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욕망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를 통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이번에는 철저히 ‘여성의 시선’을 반영한 연출을 시도합니다. 특히 섬세한 공간 구성, 카메라의 위치, 조명 사용 등 미장센은 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부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욕조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전형적인 남성 시선의 에로틱한 연출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감독은 오히려 두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을 강조합니다. 카메라는 관음이 아닌 공감의 위치에 있으며, 관객은 인물의 감정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또한 히데코가 낭독을 하던 방, 숙희가 갇혔던 감금의 공간 등 모든 장치는 ‘여성을 구속하는 구조물’로 작동하다가 후반부에 이를 파괴하는 상징으로 변화합니다. 히데코가 삼촌의 서재에서 벗어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가장 강력한 시각적 해방의 선언으로 읽힙니다. ‘아가씨’의 미장센은 단지 아름다운 화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감정과 시선을 중심에 두는 서사의 연장선으로 묘사됩니다.

여성의 이야기로 완성된 아름답고 완전한 탈출

<아가씨>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스릴러가 아니라 남성 권력의 구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연대하며 벗어 나왔는지를 강렬하면서도 우아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히데코와 숙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 입었지만, 서로를 통해 치유받고 결국은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흔히 폭력적이고 야한 영화라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둘 다 남성의 지배 속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시대적으로 여성을 지배와 학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남성성만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이 영화는 그들의 탈출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를 묻기보다, 그 탈출의 감정과 의지를 가장 섬세하게 구현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여성 해방의 서사’를 완성합니다. ‘아가씨’는 한국 영화가 도달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성 중심 서사 중 하나이며, 단지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감동시키는 이야기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