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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 권력의 그림자와 인간의 양면성

by maymoney12 2025. 6. 22.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건을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로, 권력의 실체와 인간 심리의 깊이를 탁월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등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와 함께,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면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의 이면을 조명한 영화 – ‘누가 권력을 움직이는가?’

‘남산의 부장들’은 2020년 개봉 당시,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닌 깊이 있는 인간 드라마로 주목받았습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인 ‘10·26 사건’을 중심으로, 그 직전 40일간의 정치권 내부 갈등을 묘사하며 관객에게 단순한 팩트 전달 이상의 의미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강렬하고 섬세한 심리전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 특히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실존 인물 김재규 기반)’은 극의 중심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이성, 충성심과 배반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 ‘충성은 언제 변절이 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권력과 인간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합니다.

밀도 높은 연기와 냉철한 연출 – 영화의 구조와 미장센

1. 인물 간 심리전이 만든 긴장감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액션’이 아닌 ‘표정과 대사’만으로도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병헌과 이희준(곽상천 역), 곽도원(박용각 역)의 삼각 구도는 하나의 총격보다도 더 날카로운 말들의 대결로 이어집니다. 이병헌은 김규평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그의 시선은 늘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치밀함과 결단이 숨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점점 압박받는 그의 내면은 절제된 눈빛과 단단한 말투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성민이 연기한 박통은 실명을 쓰지 않았음에도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끔 디테일한 화법, 억양, 표정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는 잔혹하지 않지만 냉정하며, 무자비하지 않지만 절대적인 권력자로 묘사됩니다. 이 캐릭터의 절제된 연기는 영화 전체의 무게를 단단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2. 공간과 시간의 구성 – 제한된 틀 속에서의 서사 확장
‘남산의 부장들’은 대부분 실내, 특히 관저와 정보부, 국회 청문회장 등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답답함은 오히려 권력의 폐쇄성과 독단성을 은유하며, 관객의 몰입을 한층 더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극 중 시점은 실제 사건 발생 전 40일이라는 제한적 시간 안에 설정되어 있지만, 회상과 회의, 취조와 보고, 해외 밀담 등 다양한 시공간을 교차하면서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닌 인물 심리의 궤적을 따라가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국 워싱턴에서의 외교 전과 CIA 접촉 장면은 한국 정치가 당시 얼마나 외부 세력에 민감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내부자들’끼리의 충돌만이 아닌 ‘외부의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드러냅니다.

3. ‘왜’가 아닌 ‘어떻게’에 집중한 각본
많은 정치 영화들이 ‘왜 그랬는가’에 집중하는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이 영화는 하나의 정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과 입장을 통해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열린 구조를 택합니다. 김규평은 역사의 영웅인가, 배신자인가? 그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반역일까, 인간에 대한 존중일까?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에 계속 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재현극이 아닌 철학적, 심리적, 윤리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으로 기능하는 이유입니다.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 – 권력과 인간성에 대한 성찰

‘남산의 부장들’은 과거를 말하지만, 현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박정희 정권과 김재규의 갈등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그리고 그 무력함 속에서 ‘선택’이라는 고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정면으로 그려냅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의 기록”이라고.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그 시대의 문제가 여전히 다른 얼굴로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절대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권력의 정당성은 지금도 매 순간 시험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정치와 인간’을 동시에 다룬 작품이며, 그 깊이와 진중함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퇴색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