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모든 장면은 한 장의 시나리오에서 비롯됩니다. 훌륭한 시나리오는 단순한 이야기 요약이 아닌, 시각적 상상력과 감정의 흐름을 설계한 설계도입니다. 본문에서는 영화 시나리오 작성의 핵심 구조, 인물 설정, 장면 구성, 그리고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실전 전략을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시나리오, 영화의 뼈대를 만드는 작업
영화는 시각적 예술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철저히 언어적입니다. 시나리오는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설계도이자, 모든 창작의 기준점이 됩니다. 단지 줄거리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장면의 구조, 인물의 감정선, 대사의 리듬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초보자들이 종종 오해하는 부분은 시나리오가 ‘소설처럼 쓰이면 된다’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글 자체로 읽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촬영과 편집, 연기에 쓰이기 위한 글입니다. 즉, 감정은 드러나야 하고, 행동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시각화 가능한 구조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실제로 작품을 완성한 작가들이 어떤 전략과 순서를 거쳐 작업을 진행했는지를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자 합니다.
시나리오 구성 4단계와 작법 전략
영화 시나리오의 전통적 구조는 흔히 3막 구조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이보다 세분화된 4단계 구성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1. 프레미스(기획 아이디어) 프레미스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이야기의 핵심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기생충》의 프레미스는 "가난한 가족이 부잣집에 하나씩 침투하며 벌어지는 계층의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시나리오의 모든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프레미스를 설계할 때는 주제(Theme), 인물(Characters), 갈등(Conflict), 변화(Change)를 한 줄에 담아야 합니다.
2. 시놉시스 및 트리트먼트 구성 시놉시스는 전체 줄거리를 요약한 개요입니다. 트리트먼트는 장면별 요약이며, 약 10~15페이지 분량으로 전체 극을 조망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단계에서 인물의 관계, 사건의 구조, 클라이맥스와 결말의 윤곽을 잡습니다.
3. 캐릭터 설정 시나리오의 핵심은 결국 ‘인물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각 캐릭터는 명확한 목적(Motivation), 결핍(Flaw), 변화를 위한 여정(Arc)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버닝》(이창동 감독)의 종수는 막연한 불만을 가진 청년으로 시작해, 정체성과 분노에 눈뜨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캐릭터는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4. 씬(Scene)과 대사(Dialogue)의 배치 영화는 장면(Scene)의 연속이며, 각 장면은 하나의 사건 단위입니다. 장면은 시작(도입), 전개(갈등), 결말(반응)이라는 구조를 가지며, 매 장면마다 인물의 선택 혹은 반응이 있어야 극의 흐름이 살아납니다. 대사는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불필요한 설명 없이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합니다. 이 구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반복적인 리라이팅 과정을 통해 리듬, 대사, 전개 속도를 조율하게 됩니다. 실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시나리오 초안은 5차례 이상 수정 과정을 거쳤고, 촬영 직전까지 배우들과 함께 대사 수정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들은 ‘스크립트 닥터’ 또는 ‘리딩 워크숍’ 등을 통해 타인의 피드백을 받아 작품을 점검하는 단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창작자가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맹점을 보완하고, 실제 배우가 연기했을 때의 감정선을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시나리오는 카메라보다 먼저 영화를 본다
시나리오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상상 속 장면을 조각하고, 인물의 감정선과 움직임을 설계합니다. 훌륭한 시나리오는 단지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보이도록’ 쓰여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법은 창작자의 시선과 구조적 사고가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되 감정을 설계해야 하며, 장면을 구상하되 관객의 반응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 복잡한 과정 속에서 창작자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하나하나 장면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영화는 팀워크의 예술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점은 항상 한 명의 작가, 한 장의 문서입니다. 시나리오는 그 한 사람의 시선이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여정의 첫 출발선입니다. 그러므로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영화를 시작하는 가장 진지하고 섬세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