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은 특정 역사적 배경 속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하여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장르입니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곤 합니다. 본 글에서는 시대극에서의 역사 왜곡 논란과 그 기준, 실제 사례,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찰합니다.
시대극은 기록인가 상상인가, 모호한 경계 위에서
시대극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고궁, 의복, 언어는 분명 옛날의 것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갈등 구조나 인물의 감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재의 감성으로 바라본 과거’라는 관점은 시대극을 흥미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실존 인물의 평가가 지나치게 왜곡될 경우, 그 콘텐츠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술적 접근이 아닌 대중 콘텐츠라는 특성상, 시청자 대부분은 드라마에서 접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제작자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 해석자' 역할을 맡게 되는 셈입니다.
역사 왜곡 논란 사례와 시대극 제작의 책임
1. 《설강화》(JTBC, 2021) – 민주화 운동에 대한 민감한 접근
이 드라마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보안요원과 간첩 설정이 민주화 운동과 결합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실제로 민주화 운동 피해자 단체를 비롯한 시청자들은 "역사적 고통을 로맨스 장치로 소비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제작진은 "픽션임을 명확히 밝혔다"라고 해명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감정이 얽힌 시기의 서사를 다룰 때는 단순한 픽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안겼습니다.
2. 《조선구마사》(SBS, 2021) – 왜색 논란과 역사 왜곡
해당 드라마는 조선시대 배경의 퇴마극이었으나, 음식, 의복, 배경 음악 등 다수의 요소가 일본 문화나 중국 문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인 태종, 세종 등 역사적 인물을 지나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반발을 샀고,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픽션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실존 인물의 성격이나 업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3. 제작자의 책임과 ‘팩션’의 한계
제작자들은 종종 '팩션(Faction: Fact + Fiction)'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과 허구를 혼합합니다. 이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할 경우, 허구가 사실을 압도하게 되고, 이는 대중 인식에 왜곡된 역사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실존 인물의 악행이나 공적을 재해석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맥락을 단순화할 경우, 해당 시대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교과서보다 드라마에서 역사를 더 자주 접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역사 소재를 다루는 콘텐츠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창작’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그 사실이 단지 배경이나 장치로만 사용되지 않도록 진정성 있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사이, 시대극이 나아갈 길
시대극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그 ‘과거’가 왜곡된다면, 결국 ‘현재’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현실 속에 뿌리 내리고 있고, 관객은 그 세계를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작자에게는 창작의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역사에 대한 책임도 함께 따릅니다. 이는 단지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자 기준입니다. 앞으로의 시대극은 더욱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존중’은 단지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를 통해 배우는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