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모두 첫사랑의 기억을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어 두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순수하고 서툰 사랑의 감정을 담담하면서도 감성적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사랑과 성장이라는 두 키워드를 통해 삶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첫사랑의 기억은 왜 오래 남는가 – ‘건축학개론’이 가진 감정의 설계도
2012년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룬 수많은 한국 영화들 가운데서도 특히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감정과 변화를 함께 바라보며 사랑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지를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서연과 승민, 두 인물은 대학교 교양 수업 ‘건축학개론’에서 처음 만나 서툴지만 진심 어린 감정을 나눕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완성되지 못하고 이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서연은 승민을 찾아가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며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 말하지 못했던 감정, 그리고 성장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건축학개론>은 바로 그 집을 지어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남긴 흔적과, 그로 인해 성장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과거의 사랑 – 서툴지만 순수했던 첫 설계
대학생 시절의 서연(배수지 분)과 승민(이제훈 분)은 서로에게 첫 감정을 느끼는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함께 과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작은 일에도 서로 설레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특히 승민이 서연을 위해 건축 도면을 그려주고, 혼자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순수함과 서툶이 공존하는 첫사랑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해와 타이밍의 어긋남, 자신감 부족과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아닌, 그 나이대에 누구나 겪었을 법한 감정의 복잡함과 미성숙함을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말하지 못했고, 혹은 늦게 깨닫거나, 혹은 용기를 내지 못했던 순간들. 여기서 우리들의 첫사랑의 아련함을 끄집어내어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서연이 되고, 또 승민이 되어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 사랑이 끝났기에 더 아름답고, 그 끝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는 영화를 더욱 감성적으로 만듭니다.
2. 현재의 만남 – 기억 속 설계도를 다시 펼치다
성인이 된 서연(한가인 분)은 승민(엄태웅 분)에게 자신의 집을 설계해 달라고 의뢰하면서 다시 그의 삶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피하고, 과거를 들춰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함께 작업을 하며 그들은 차츰 과거의 감정을 직면하게 됩니다. 과거의 오해, 감정의 상처,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은 사랑보다도 ‘용서’와 ‘이해’에 가까운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재회가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건축학개론>은 신파적인 또는 클리셰인 결말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들은 과거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하지만, 다시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이 성숙한 선택은 첫사랑이 미완으로 남았기에 우리의 마음속에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는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3. 성장의 구조 – 사랑은 우리를 만든다
건축이라는 소재는 이 영화의 정서를 지탱하는 핵심 메타포로 쓰입니다. 과거의 기억은 토대가 되고, 현재의 선택은 설계이며, 미래는 우리가 지어갈 공간입니다. 승민은 건축가가 되었지만, 서연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짓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서연 역시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면서 자신이 아직도 무언가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이 함께 집을 지어가는 과정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감정과 삶을 정리하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여정입니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그들의 일부로 남아 있으며 그 감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아주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건축이 단단한 집을 짓는 일이라면, 사랑은 단단한 마음을 짓는 일이라는 감독의 시선이 이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습니다.
사랑은 끝나도 감정은 남는다 – ‘건축학개론’이 전하는 따뜻한 이별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성장의 서사를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나 <20세기 소녀>에서처럼 누구나 겪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그 감정을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시간이 만든 틈을 존중하며, 사람이 관계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 사랑은 두 사람 모두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첫사랑은 충분히 의미 있는 기억이 됩니다.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가 한때 설계하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웠던 마음의 구조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