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드라마 속 기술직 캐릭터는 주변 인물로 제한되었지만, 최근 들어 중심 서사에 적극적으로 편입되며 주체적인 인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술직 캐릭터의 변화된 위상과 그들이 드라마 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사례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현장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직, 드라마의 중심에 서다
오랜 시간 동안 드라마에서 기술직 캐릭터는 주로 배경 인물, 조연 혹은 ‘기능적 캐릭터’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이 주체적인 서사의 중심에 서며, 직업적 전문성과 인간적인 서사를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직업군의 확장을 넘어서,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드라마 서사의 변화 방향을 함께 보여주는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직이라 하면 전기기사, 용접공, 기계 엔지니어, 자동차 정비사, 목수, 수의사, 프로그래머, 디자인 기술자 등 손과 도구를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직업군을 말합니다. 이들은 실제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감정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명되지 않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는 기술직 인물들을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이자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주체’로 그리며, 그들의 삶과 고민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직업 서사의 다양화라는 흐름 속에서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며, 현실 반영적이면서도 공감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드라마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드라마 속 기술직 캐릭터의 변화와 사례 분석
첫 번째 변화는 **기술직이 중심 서사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낭만닥터 김사부》(SBS 시리즈)에서 외과의는 단순히 의학지식만으로 인물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손끝으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외과 전문 기술자’로서의 모습이 강조되며, 인물의 윤리와 사명감이 그 기술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감정과 직무가 맞물린 서사를 설계합니다. 두 번째는 **현장을 이해하고 지켜내는 사람으로의 묘사**입니다. 《모범택시》(SBS, 2021~)의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는 전직 특수부대원이자, 현재는 정의 구현을 위해 택시기사로 일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택시 운전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만나는 연결점이며, 주인공이 사회 구조 속 문제를 파악하고 행동하는 기점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숙련도, 판단력, 인간적 공감 능력이 함께 강조됩니다. 세 번째는 **정서적 가치와 직업적 자부심의 연결**입니다. 《우리들의 블루스》(tvN, 2022)에서는 수산시장 상인, 트럭 운전기사, 냉장고 수리공 같은 생활밀착형 기술직 인물이 중심서사에 등장합니다. 이들은 특정 기술을 통해 삶을 유지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기술을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기술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때로는 감정적 치유와 연결되며, 서사의 중요한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즉, 드라마는 기술직 캐릭터를 통해 사회적 기능성과 인간적 성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이해》(JTBC, 2022)의 주인공 하상수(유연석 분)는 은행원이라는 직업 안에서도 ‘상담’과 ‘데이터 처리’라는 실무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고, 고객의 삶을 관찰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는 사무직 중심의 직업군에서도 기술과 감정, 판단이 결합되는 새로운 캐릭터 묘사로 이어집니다.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 그들도 서사의 주인공이다
기술직 캐릭터의 재조명은 드라마가 현실의 다양한 삶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직업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이며, 이제 드라마는 다양한 기술직 캐릭터를 통해 직업과 인물의 관계를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직업 다양화를 넘어서, 시청자에게 ‘일’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고치는 사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충분히 드라마틱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는 가치, 갈등, 성장이라는 이야기의 핵심 요소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술직 캐릭터는 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는 더욱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제, 모든 직업에 존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