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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친코' , 원작과의 차이점에서 드러난 서사의 깊이

by maymoney12 2025. 6. 17.

드라마 파친코 스페셜 포스터

애플 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는 2022년 공개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민낯을 그려낸 작품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원작은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며, 드라마는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되 비선형적 구조와 캐릭터 중심의 연출을 통해 또 다른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본 리뷰에서는 드라마 감상 후 느낀 인상, 서사 방식, 연출의 미학, 그리고 원작과 비교했을 때의 의미 있는 차이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봅니다.

‘파친코’, 역사의 파편을 꿰어 만든 한 가족의 서사

2022년 3월, 애플 TV+에서 공개된 드라마 <파친코(Pachinko)>는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구성된 시즌1이 2022년 3~4월에 공개되었고, 시즌2는 2024년 8월~10월에 공개되어 총 16부작으로 한 가족의 다층적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드라마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약 70년에 걸친 시간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이주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4세대 서사**를 그립니다. 중심인물은 ‘선자’라는 한 여성으로, 그녀가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이주해 억압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고통을 개인의 이야기로 녹여냅니다. 파친코는 단순히 시대극이 아닙니다.  ‘한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에 두고 민족 정체성, 계급, 여성의 삶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한국의 아픈 역사를 세계 언어로 번역해 낸 드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5년 현재까지도 파친코는 해외 비평가들로부터 ‘21세기 최고의 역사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시아계 서사 확장의 시금석으로 언급됩니다. 동시에 원작을 읽은 독자와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원작의 서사 구조와 인물 해석의 차이

파친코 원작 소설은 비교적 **선형적**(Chronological)으로 전개되는 구조입니다. 소설은 선자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녀의 결혼, 일본 이주, 자녀 세대의 성장, 손자 솔로몬의 갈등까지 시간 흐름에 따라 인물의 인생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이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한 여성의 삶’을 체계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반면, 드라마는 **비선형적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시즌1에서부터 선자의 어린 시절과 노년, 그리고 손자 솔로몬의 미국 생활이 교차 편집되며 전개됩니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보다는 ‘기억의 작용’과 ‘세대 간의 단절과 연결’을 부각합니다. 이는 드라마가 선택한 **예술적 장치**이며,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개인의 역사’보다는 ‘집단적 기억’으로 이동시킵니다. 또한 드라마는 **솔로몬**이라는 인물에 상당한 비중을 둡니다. 원작에서 솔로몬은 후반부에 주로 등장하며, ‘3세대 한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인물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이 인물을 보다 전면에 배치해, ‘현재를 사는 디아스포라’가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시각적으로 강화합니다. 특히 드라마 시즌2에서 솔로몬이 회사 내 인종차별, 가족의 과거사와 마주하는 장면들은 드라마가 **정체성과 기억을 시청자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원작에서의 선자는 비교적 조용하고 인내심 강한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보다 **능동적이고 감정이 입체적으로 표현된 캐릭터**로 각색되었습니다. 윤여정이 연기한 노년 선자는 대사의 간결함 속에 깊은 정서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고요한 울림’을 전달합니다. 이 점에서 드라마는 문학적 서사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시각적, 감정적 표현을 보다 강화한 방식이라 평가받습니다. 또한 드라마는 원작에서 비중이 작았던 인물들에게도 삶의 서사를 부여합니다. 예컨대 선자의 남편 ‘백이삭’은 드라마에서 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며, 그가 일본에서의 사회운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면이 부각됩니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희생자이자 선택자였던 평범한 인물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된 연출입니다.

파친코가 남긴 것과 시즌3를 향한 가능성

‘파친코’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문학적이고 국제적인 해석을 시도한 드라마입니다. 단지 비극의 반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강인함과 고요한 존엄을 그린 서사는 지금까지의 시대극들과는 분명한 결을 달리합니다. 원작이 그랬듯, 드라마도 ‘고통을 박제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택된 서사 방식—시간을 교차시키고, 인물의 심리를 시각화하며, 감정을 화면에 담아낸 방식—은 원작과는 다르지만, ‘파친코’라는 이야기의 철학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시켰습니다. 2025년 현재, 시즌3 제작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후속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이후 삶, 한국전쟁을 겪는 선자 가족의 이야기, 일본 사회에서의 한인 사회 변화 등은 드라마로 충분히 확장 가능한 소재입니다. 결국, 파친코는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말해지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를 세계에 전달한 하나의 성공적 콘텐츠입니다. 앞으로도 ‘파친코’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하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