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불법 행위를 소재로, 교육과 윤리, 생존과 범죄의 경계를 날카롭게 파고든 문제작입니다. 주인공들의 선택은 단지 개인의 비행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반영하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양면성은 시청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본 리뷰에서는 '인간수업'이 제시하는 도덕적 혼란과 청소년 범죄의 현실적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2020년 공개 당시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범죄 드라마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고등학생 포주’라는 자극적인 설정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 묘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 오지수(김동희 분)를 중심으로, 청소년이 처한 구조적 고립과 생존의 방식, 교육이 가르치지 못하는 윤리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합니다. 오지수는 모범생입니다. 성적은 우수하고,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청소년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생활은 다릅니다. 그는 학교 밖에서 불법 성매매 알선 앱을 운영하며 범죄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방치당한 채,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는 범죄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합니다. ‘인간수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오지수의 선택이 옳았는가 하는 윤리적 판단을 유보한 채,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시청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점차 단순한 선악 판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는 곧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또한 또 다른 중심인물 배규리(박주현 분)를 통해,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청소년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배규리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와의 단절, 감정적 고립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들을 반복합니다. 두 사람의 교차 서사는, 단지 가난하거나 비행한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며, 청소년기의 복합적 심리를 조명합니다.
도덕과 생존 사이,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아이들
‘인간수업’은 범죄의 결과보다 그 ‘시작’에 주목합니다. 오지수는 처음부터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시스템은 치밀하고 냉정하지만, 그 내면은 여전히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드라마는 그 이중성을 포착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비윤리적인 괴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드라마의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서민희’입니다. 그녀는 오지수의 범죄 시스템에 실제로 이용되는 청소년입니다. 가정 폭력과 학교 내 소외로 인해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게 되는 그녀의 상황은 충격적이면서도 안타깝습니다. 서민희(정다빈 분)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었고, 그녀의 파국은 구조적 무관심이 낳은 참극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드라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명확히 그리지 않습니다. 오지수는 명백한 범죄자이지만, 그 안에서 그는 피해자이기도 하며, 또 서민희 역시 이용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수업’은 이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단순한 윤리적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과연 우리는 청소년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는가. 학교는, 사회는, 가정은, 법은,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실제로 많은 장면에서 교사나 부모는 이들의 삶에서 철저히 부재합니다. ‘인간수업’이라는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스스로 삶을 통해 배워야만 했던 수업을 의미합니다. 법과 윤리, 책임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자력 수업’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방치한 결과, 청소년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존 전략을 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붕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선택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며, 드라마는 그 파국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무너진 경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묻다
‘인간수업’은 결코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우리는 시청하는 내내 자신이 무엇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또 그 판단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되묻게 됩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청소년 범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윤리적 판단을 유보하거나 포기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실제로 그 조건들을 얼마나 자주 만들어내는지를 되짚게 합니다. 2025년 현재, ‘인간수업’은 여전히 청소년 범죄 및 교육 현실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수업’이 말합니다.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환경조차 주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점을, 침묵 속에 강하게 일깨웁니다. 우리는 그들의 ‘수업’을 지켜보며, 어른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코 드라마 밖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