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이제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서, 포맷 자체를 수출하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원작 드라마의 서사 구조와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각국의 문화에 맞게 현지화하는 방식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포맷 수출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포맷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제는 이야기 구조까지 수출하는 시대
과거 한국 드라마의 해외 진출은 완성된 영상물의 수출이 주를 이뤘습니다. 주로 한류 열풍의 연장선에서 방송사 또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영상이 그대로 유통되는 방식이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영상 그 자체가 아닌, ‘이야기의 구조’, 즉 포맷(format) 자체가 수출되고 있습니다. 포맷 수출이란 특정 드라마의 기획안, 대본, 캐릭터 구성, 주요 플롯 등을 기반으로 다른 국가에서 해당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리메이크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저작권료 수입을 넘어, 글로벌 콘텐츠 협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 콘텐츠 산업의 수익 모델 다변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드라마들이 실제로 포맷 수출에 성공했으며, 그 배경에는 어떤 전략이 있었을까요?
포맷 수출의 실제 사례와 성공 전략
1. 대표 사례: 《굿 닥터(Good Doctor)》 – 미국 리메이크의 성공
KBS 드라마 《굿 닥터》(2013)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이 작품은 미국 ABC 방송국에서 《The Good Doctor》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2017년부터 방영되었고, 현재까지 여러 시즌이 제작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포맷의 구조와 캐릭터 서사를 미국 의료 드라마 환경에 맞게 현지화한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한국의 휴먼 드라마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식 병원 시스템과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 주효했습니다.
2.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 리메이크 계약 체결 사례
tvN 드라마 《시그널》은 일본에서, 《나의 아저씨》는 중국에서 리메이크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SKY 캐슬》, 《도깨비》 등의 작품도 유럽 및 아시아권에서 포맷 문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강한 원작성, 선 굵은 캐릭터 서사, 그리고 보편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주제를 갖추고 있어 현지화에 유리한 장점을 지녔습니다.
3. 전략적 접근: 문화 중립성 확보와 유연한 현지화
포맷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바로 ‘현지화의 유연성’입니다. 한국에서 효과적이었던 설정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포맷 자체는 강력한 서사적 골격을 제공하되, 세부 설정은 현지 문화에 맞게 유연하게 바뀔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 《굿 닥터》의 경우, 한국판에서는 병원의 상명하복식 구조가 주요한 갈등 장치였다면, 미국판에서는 인종, 장애, 젠더 이슈 등 미국 사회의 이슈가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포맷 가이드라인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제공하면 제작사가 창의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핵심은 제공하고, 해석은 자유롭게’라는 원칙이 성공적인 수출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4. 제작자 중심의 글로벌 공동 기획
최근에는 포맷 수출을 넘어서, 처음부터 글로벌 공동 제작을 전제로 한 드라마 기획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작가와 제작자가 국내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해외 파트너와 협력하여 각국에서 활용 가능한 포맷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런 공동 기획 모델은 글로벌 플랫폼의 수요와 한국의 제작 노하우가 결합되어 더욱 정교하고 국제적인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토대가 됩니다.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대, 포맷 수출이 여는 가능성
드라마 포맷 수출은 단순한 저작권 비즈니스를 넘어, 이야기를 공유하는 문화적 연결입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국가, 다른 언어, 다른 배우들이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통해 공감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한국 드라마의 포맷 수출은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서, 공동 창작과 공동 기획이라는 새로운 협업 모델이 중심이 될 것이며, 이는 콘텐츠 산업의 국제화를 넘어 ‘이야기의 세계화’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결국 한국 드라마의 힘은, 보편적인 감정과 정교한 서사 구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계가 한국 드라마 포맷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