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 4에 해당하는 영화 ‘이터널스’는 신과 같은 존재들의 개입과 인간의 운명을 다룬 독특한 작품입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철학적 접근과 미장센 중심 연출은 MCU 기존 팬들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당혹감을 안겼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이터널스의 MCU 내 서사적 위치, 스토리 구조, 인물 분석, 그리고 관람 후 느껴지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우주적 존재들이 지구에 머문 이유 – 마블의 새로운 우주관
<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4의 첫 본격적인 세계관 확장 작품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의 세계에서 지구라는 행성과 인류의 진화에 ‘우주적 존재’들이 개입했음을 처음으로 밝힌 영화입니다.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을 맡으면서 이 영화는 기존 MCU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 채 관객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대한 미장센,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대사, 서사 중심이 아닌 사유 중심의 전개 방식은 <이터널스>가 단순한 히어로 액션물이라기보다 신화적, 종교적, 존재론적 성격을 지닌 영화임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은 관객들에게 양극단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본 마블 영화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낯설고 지루하다”는 피로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이터널스>가 MCU 전체 세계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또한 영화 자체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과 서사 구조, 감상 후의 인상 등을 중심으로 보다 심층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MCU 세계관에서 ‘이터널스’의 위치 – 기원, 신화, 그리고 확장
<이터널스>는 MCU의 기원을 재해석하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MCU는 ‘아이언맨’부터 ‘엔드게임’까지 주로 인간과 외계 문명의 충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터널스는 ‘지구에 왜 초능력자들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설명을 제시합니다. 영화 속 이터널스는 우주의 창조자인 ‘셀레스티얼(Celestial)’에 의해 만들어진 불사의 존재들로, 지구에 파견되어 ‘데비안츠(Deviants)’라는 괴생명체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창조주 – 피조물 – 인간 사이의 위계 관계를 설정하며, 종교적 구조와 신화적 상징을 적극 활용합니다. 즉, <이터널스>는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MCU의 히어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작품입니다. 또한, 이터널스는 ‘블립’ 이후 지구의 인구 회복이 ‘자각’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정을 통해 ‘어벤져스’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 말은 곧, 타노스의 스냅이 이터널스 세계관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셀레스티얼 ‘아리솀(데이비드 케이 분)’이 지구를 파괴하려는 이유 역시 인류의 번식과 의식 진화가 새로운 창조주를 탄생시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며, 이는 MCU 세계관 내에 또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즉, 이터널스는 MCU가 단지 히어로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서사로 확장되고 있음을 정식으로 선언한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캐릭터 구조와 연출 방식 – 균형과 감정의 실험
이터널스는 총 10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각각 ‘시간 조작’, ‘힘’, ‘속도’, ‘정신 조작’ 등 고유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다양한 인종과 성별, 정체성을 반영한 포용적 캐스팅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캐릭터들이 2시간 30분 분량의 서사 안에서 충분히 조화롭게 그려졌느냐는 점에서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특히 클로이 자오 감독은 MCU 특유의 쾌속 전개와 유머 코드를 배제하고, 각 인물의 고뇌, 내적 충돌, 사랑과 상실을 천천히 풀어냅니다. 이로 인해 기존 마블 팬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히어로도 인간처럼 고민하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서사적 깊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세르시(젬마 찬 분)’는 인류에 대한 애정과 사명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분)’는 냉정한 충성심과 죄책감 사이에서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두 인물의 로맨스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우주적 사명의 비극으로 그려집니다. 또한, 시각적으로는 클로이 자오 감독 특유의 광활한 풍경 촬영과 자연광 중심의 조명이 기존 MCU의 과도한 CG 스타일과는 완전히 차별화됩니다. 이러한 연출은 ‘우주적 존재의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히어로의 시선이 아닌 신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터널스는 캐릭터 중심의 감정 영화이며, 액션보다 관계에 집중하는 ‘정적인 마블’입니다.
3. 감상 후기 – 낯선 실험, 그러나 의미 있는 도전
<이터널스>는 MCU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입니다. 기존의 히어로 서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느리고 복잡하며, 친숙하지 않은 영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지닌 메시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신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방식 등은 MCU가 단지 ‘흥행 시리즈’가 아닌 하나의 세계관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극장에서의 흥행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OTT에서의 재평가가 지속되고 있으며 2025년 현재까지도 <이터널스>는 ‘세계관 확장형 작품’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엔드 크레딧 장면에서 ‘블랙 나이트(데인 휘트먼)’와 ‘에로스(스타폭스)’의 등장으로 차기 세계관 확장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블레이드’와의 연계도 암시되면서 MCU 페이즈 5~6로 이어지는 서사적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터널스는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MCU의 ‘우주 신화’ 시리즈를 여는 프롤로그였습니다.
마블의 낯선 질문, ‘이터널스’가 남긴 철학적 여운
이터널스는 MCU가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 ‘신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 첫 번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전투보다 인간의 감정, 선택의 무게, 그리고 책임을 중심에 둡니다. 그렇기에 다소 낯설고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2025년의 지금, 이터널스는 MCU의 주요 인물들과 아직 본격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멀티버스’와 ‘신적 존재’라는 서사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지점에 있습니다. 이터널스는 마블의 가장 조용한 영화였지만, 동시에 가장 큰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