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은 평범한 사업가가 마약 밀매범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국가 권력, 범죄 조직, 개인의 생존 본능이 교차하는 복잡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된 이 작품은 ‘합리적 악’의 메커니즘과 주체적 선택의 윤리적 무게를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본 리뷰에서는 드라마가 구현한 서사의 힘과 인물의 내면, 그리고 사회적 함의를 알아봅니다.
‘수리남’이 그려낸 낯선 나라, 낯익은 구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2022년 공개 이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을 배경으로, 실제 마약 조직의 활동과 한국인의 개입을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주인공 강인구(하정우 분)는 평범한 생선 가공업자이자 가장이며, 사업 실패를 만회하고자 수리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사업의 영역을 넘어서, 거대한 범죄 조직과 국가 권력, 그리고 생존을 위한 도박적 선택이 교차하는 세계였습니다. ‘수리남’은 전형적인 범죄물이 아닙니다. 범죄와 싸우는 자가 반드시 정의로운 것도 아니며, 악인이 반드시 괴물처럼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적인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시스템의 윤곽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강인구의 시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단순히 선악을 판단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강요받았는지를 관찰하게 만듭니다. 수리남이라는 공간은 생소하지만, 드라마 속 구조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약한 국가, 부패한 권력, 시장을 장악한 범죄 조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 이 네 가지 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국제 정치와 범죄 사회의 전형적 구조이며, ‘수리남’은 이를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지 ‘어디서 본 듯한 마약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국제 범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시도라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인물의 선택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스템
‘수리남’의 중심은 강인구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합법적인 수산업 사업가로 등장하며, 가족을 위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고자 수리남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곧 전요한(황정민 분)이라는 이름의 목사이자 마약왕,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국가와 결탁된 범죄 시스템에 휘말리게 됩니다. 전요한은 종교를 도구로 삼아 자신을 정당화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의 사자라 칭하며, 약물 중독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코카인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마약 밀매범이며, 권력층과의 유착을 통해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살아갑니다. 이 인물은 ‘신을 가장한 자본주의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인구는 처음에는 전요한의 사기 행각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였지만, 이후 국정원과 손을 잡으며 정보원 역할을 자청합니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는 국가가 결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이 선택한 윤리인가? 강인구는 범죄를 막기 위한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범죄에 협력하게 되며, 스스로의 안전과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리남’의 인물들은 모두 명확한 선이나 악의 개념보다는, 생존과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복합적인 인물들입니다. 국정원의 최창호 요원 또한 완벽한 정의 실현자가 아닙니다. 그는 실리를 위해 타협하고,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거짓을 서슴지 않으며, 결국 강인구를 이용하는 것 이상의 감정은 없습니다. 작품은 이러한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국가’라는 구조도 결국 이익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 불과함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보다, 국가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를 도구화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은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유보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수리남’은 단지 범죄를 다룬 드라마가 아니라, 국제 정치와 자본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사회 드라마로 확장됩니다.
‘수리남’이 남긴 잔상과 콘텐츠로서의 가치
‘수리남’은 시청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에서, 개인은 언제든지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구조는 개인의 윤리적 갈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강인구의 여정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그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목격해야 했으며, 정의를 위해 싸웠음에도 죄책감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국가의 요청이라면, 당신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이기에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2025년 현재, ‘수리남’은 글로벌 시장에서 K-드라마가 새로운 장르로 진입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현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라는 점, 범죄와 종교, 정치와 자본이 얽힌 구조적 서사를 성공적으로 시각화한 점에서 비평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수리남'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이며, 개인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가를 묻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가장 현실적인 픽션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