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가족’은 한 가정의 평범한 일상이 범죄와 맞닿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붕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범죄 심리극입니다. 선택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파국의 흐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각 인물의 결정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모범가족’의 서사를 살펴봅니다.
일상의 균열, 모범적이지 않은 선택의 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범가족’은 2022년 공개와 동시에 주목을 받은 한국 범죄 드라마입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가장의 위기와 그로 인한 비밀스러운 선택을 그리고 있으나,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가족의 이중성, 생존을 둘러싼 윤리의 문제, 그리고 일상이 어떻게 범죄로 기울어지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대학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뒤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평범한 가장 ‘박동하(정우 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우연히 도로 한복판에서 마약 조직 관련 인물의 시신이 든 차량을 발견하고, 그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 출발점은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박동하의 선택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경제적 실패에 대한 자책, 사회적 체면에 대한 집착 속에서 움직입니다. 이러한 동기는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도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끝에 서 있는 문 하나를 두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범가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매우 탁월한 현실성을 드러냅니다. 악인은 없지만, 선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책임과 죄책감, 선택의 무게를 감내하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작품이 전개될수록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 안에서 각자의 도덕 기준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타협과 침묵
‘모범가족’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기능합니다. 극 중 박동하 가족은 외형적으로는 평범하고 단란해 보이나, 이미 내부적으로는 오래전부터 균열이 발생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에 짓눌려 있으며, 아내 은주(윤진서 분)는 남편에 대한 불신과 외로움 속에서 다른 선택지를 고민합니다. 자녀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상처와 갈등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들이 마주하는 위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박동하가 돈 가방을 숨긴 순간부터, 가족은 더 이상 예전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족’이라는 개념은 실상 자신조차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그 모호함은 결국 더 큰 불행을 야기합니다. 드라마는 단지 범죄의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 간의 미묘한 관계 변화, 그 사이에 오가는 눈빛과 침묵, 그리고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통해 진정한 갈등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특히 아내 은주가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보여주는 태도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고, 신뢰는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박동하가 점점 마약 조직과 깊이 얽히게 되는 과정은, 인간이 처한 환경과 심리 상태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으나, 점차 그 선택은 회피와 침묵,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방조로 이어지며, 결국 본인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모범가족’은 이처럼, 사람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가족을 통해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스스로의 삶과 선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운을 남깁니다.
모범이라는 허상,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
‘모범가족’은 결국 우리가 일상 속에서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정상성, 도덕성, 가족이라는 틀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구 하나 명백한 악인은 아니며, 오히려 그들의 모든 선택에는 이유와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정당성의 외피 아래 감춰진 이기심, 두려움, 외면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 드라마는 조용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에서 박동하는 처음 그가 서 있었던 지점보다도 훨씬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그가 선택한 모든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과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모범가족’은 우리 각자가 속한 일상이라는 무대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삶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선택과 타협의 흔적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물이 아닌 현대 사회를 해석하는 하나의 서사적 해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보고 난 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모범’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