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인공지능(AI) 캐릭터는 단순한 기술적 상상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감정과 존재의 의미까지 질문하는 서사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드라마 속 AI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어떤 상징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로봇에서 인격체로: 드라마 속 AI의 정체성 변화
초기 드라마에서 AI 캐릭터는 보조적 장치였습니다.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거나 기술의 진보를 상징하는 존재로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AI 기술이 현실 사회에 빠르게 적용되고, 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확대되면서 드라마 속 AI도 단순한 기능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I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존재’, 혹은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는 타자’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SF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로맨스, 휴먼드라마, 심지어 가족극 속에서도 나타나며, 시청자에게 새로운 감정적 경험과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도 AI 캐릭터는 점차 독립된 서사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인간과 AI의 관계성, 경계, 공감 능력 등이 주요 테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AI 캐릭터의 주요 사례와 서사적 역할 변화
1. 《너도 인간이니》(KBS, 2018) – 인간의 대체물이 아닌, 정서적 존재로
이 드라마는 인공지능 로봇 ‘남신Ⅲ’가 인간 주인공을 대신해 사회에 적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을 흉내 내는 기능적 존재로 등장하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AI가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 중심 서사로 자리 잡습니다. 이 작품은 AI가 인간의 빈자리를 메우는 대체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로 자립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조명하면서 인간과의 정서적 교감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2.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SBS, 2021) – AI의 비가시적 존재로서의 영향
직접적으로 AI가 등장하지 않지만, 인공지능 기반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인간의 감정과 소비, 연애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속 패션업계에서 사용되는 AI 예측 시스템은 등장인물의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인간관계와 감정의 흐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무형의 캐릭터’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 2018) –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AI
증강현실(AI 기반 인터랙티브 게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는, AI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인간이 진짜 감정을 느끼고, 실제 상처를 입는 구조를 통해 서사적 장치를 확장합니다. 여기서 AI는 단순히 게임 속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두려움, 욕망, 죄책감을 구현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이야기 세계’를 재구성하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 변화의 흐름 – 기능에서 주체로
최근 AI 캐릭터는 단순한 '서포터'가 아닌, 이야기의 주체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혹은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AI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거울로 작용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정체성과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사회가 기술과 인간의 경계에 놓인 시대에 들어섰음을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AI는 이제 또 하나의 ‘인간’이다
드라마 속 AI 캐릭터는 더 이상 기계적인 도구나 공상적 상상력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하고, 상실을 겪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질문합니다. 이는 드라마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마주한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AI 캐릭터는 더욱 다양해질 것입니다. 단순히 인간을 돕는 존재에서 나아가, 인간과 함께 감정과 삶을 공유하는 서사 속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또 한 번 다가서게 됩니다.